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모리 오가이 (문단 편집) == 개요 == || {{{#!wiki style="margin: -5px -10px" [[파일:attachment/uploadfile/Amoriougai.jpg|width=100%]]}}} || || {{{#ffffff '''육군 정복을 입은 모리 오가이'''}}} || [[일본]]의 [[소설가]], 평론가, 의사. [[시마네]]현의 츠와노(津和野)[* 현재 시마네현 카노아시군 츠와노정] 출신이다. [[나쓰메 소세키]]와 함께 근대 일본 소설의 거장, [[메이지 시대|메이지]] 정신의 화신으로 평가받는 인물이다. 나쓰메 소세키의 이미지가 자아 성찰, 초연함, 반권위적이라면 모리 오가이의 이미지는 [[경파]], 견실함, 권위적으로 서로 이미지가 대조되는 측면도 있다[* 둘 다 [[러일전쟁]] 당시 뤼순 공격에 참가했던 [[노기 마레스케]]의 [[자살]]에 충격을 받고 그 영향을 받은 소설을 썼다. 덧붙여 노기 마레스케는 [[메이지 덴노]]의 부음을 듣고 죽은 것.][* 나츠메 소세키는 『[[마음(소설)|마음]]』에서 [[노기 마레스케]]의 자살과 선생의 자살을 연관시켰으며, 모리 오가이는 이 사건에 영향을 받아『오키쓰 야고에몬의 유서(興津弥五右衛門の遺書)』를 썼다.]. 또한 모리 오가이는 [[분큐]], 메이지, 다이쇼 시대를 살았는데 거의 평생을 메이지 시대 속에 살아갔던 셈이다. 모리 오가이는 필명으로, 문학인이 아닌 군의관으로서는 본명인 모리 린타로(森林太郎)로 활동했다. 오가이라는 필명은 현재의 [[스미다가와]]에 있는 시라히게바시(白鬚橋) 부근에 있던 "갈매기가 건너가는 바깥쪽(鷗の渡しの外, かもめのわたしのそと)"에서 유래한 것으로, 모리가 상경한 후 거주하던 센주[* 오늘날의 [[아다치구]]와 [[아라카와구]]의 경계에 있는 지역. 오늘날에는 기타센주와 미나미센주로 나뉘었다.]를 의미한다.[[https://www.city.adachi.tokyo.jp/hakubutsukan/chiikibunka/hakubutsukan/manabu-moriogai.html|#]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